좌판 위의 명품백과 에루샤 매장의 몰락


좌판 위의 명품백과 에루샤 매장의 몰락

파리의 어느 골목이었다.

관광객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유럽 감성을 느끼고 있다”는 얼굴과 “근데 생각보다 발 아프다”는 얼굴이 반반 섞인 표정.

그 골목 모퉁이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는 번쩍번쩍한 명품 매장이 있었다.
문 앞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직원이 서 있었고, 유리창 안에는 가방 하나가 조명 아래 놓여 있었다.

그 가방은 너무 고귀해 보였다.

마치 인간 따위가 손에 들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 박물관에서 “이것이 자본주의 말기의 제사용 항아리입니다”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매장에서 불과 열 걸음 떨어진 길거리 좌판에 똑같이 생긴 가방들이 널려 있었다.

정말 널려 있었다.

명품백이 아니라 마치 시장에서 양파망 파는 것처럼 널려 있었다.

“언니, 보고 가. 이거 완전 새 거야.”

좌판 주인은 한국어도 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구역이라 그랬는지, 그는 다국어 능력자였다.

“언니, 샤넬 있어. 루이 있어. 디올 있어. 오늘만 싸. 경찰 오기 전까지만 싸.”

마지막 말이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믿음이 갔다.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못 본 척했다.

그런데 못 본 척하는 눈이 너무 바빴다.
다들 고개는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좌판 위 가방을 스캔하고 있었다.

인간의 도덕성은 목에 있고, 욕망은 눈동자에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민서.

민서는 여행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명품백 하나 사볼까?”

그녀는 3개월 동안 인터넷 후기를 봤다.

“파리에서 사면 한국보다 저렴하다.”
“택스리펀 받으면 이득이다.”
“근데 환율이 미쳤다.”
“근데 나도 미쳤다.”

결론은 늘 같았다.

사고 싶다.

하지만 가격표를 볼 때마다 현실이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네 통장 잔고 봤니?”

잔고는 조용했지만 강력했다.

그날도 민서는 명품 매장 앞에서 멈춰 섰다.
유리창 안 가방을 바라봤다.

반짝였다.

정말 예뻤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는 순간 그녀의 영혼이 잠깐 몸을 떠났다.

“이 가격이면 월세 몇 달이지?”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속삭였다.

“언니.”

민서는 돌아봤다.

길거리 좌판 주인이었다.

그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묘하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들고 있었다.

“똑같은 거 있어.”

“네?”

“저기 매장 거. 똑같아. 근데 싸.”

민서는 당황했다.

좌판 위에는 정말 비슷한 가방이 있었다.

너무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똑같았다.
가까이서 보면 약간 이상했다.

로고의 간격이 미세하게 어색했고, 박음질은 자유민주주의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있었다.

명품의 냄새는 아니었지만, 명품을 꿈꾸다 중간에 체념한 냄새가 났다.

“얼마예요?”

좌판 주인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오백 유로요?”

“아니. 오십.”

민서의 심장이 흔들렸다.

오십 유로.

유럽 물가를 생각하면 거의 기념품이었다.
한국 돈으로도 진짜 명품백의 손잡이 그림자 정도 가격이었다.

“근데 이거 괜찮아요?”

좌판 주인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이거 A급이야.”

“진짜요?”

“응. 거의 진짜.”

“거의?”

“인생도 거의 진짜잖아.”

민서는 할 말을 잃었다.

좌판 주인은 철학자였다.

그때, 옆에서 다른 관광객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거 보증서 있어요?”

민서는 속으로 웃었다.

길거리 좌판에서 보증서를 찾다니.
인간은 참 귀엽고도 무섭다.

그런데 좌판 주인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있어.”

민서는 눈을 크게 떴다.

“있다고요?”

좌판 주인은 허리춤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 안에는 카드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겉면에는 삐뚤빼뚤한 금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CERTIFICATE OF LUXURY

민서는 숨을 삼켰다.

“이게 뭐예요?”

좌판 주인이 당당하게 말했다.

“보증서.”

“근데 브랜드명이 없는데요?”

“명품은 원래 말이 없어.”

이쯤 되자 민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좌판 주인이 핸드폰을 꺼냈다.

“언니, 영상 보여줄게.”

“무슨 영상이요?”

“이 가방이 매장에서 나온 영상.”

민서는 황당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인류의 모든 불행은 대체로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좌판 주인은 휴대폰 화면을 켰다.

영상 속에는 명품 매장 내부가 보였다.

고급스러운 조명, 흰 장갑을 낀 직원, 유리 진열대, 그리고 멋진 쇼핑백.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흔들렸다.

누군가 매장 안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한 남자가 진열대 근처에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뛰었다.

정말 뛰었다.

직원 한 명이 뒤따라 뛰었다.

정장을 입고 뛰는 사람은 늘 어딘가 슬퍼 보인다.

영상 속 남자는 매장 문을 박차고 나왔고, 직원은 “Sir! Sir!” 하고 외쳤다.

그러자 좌판 주인이 영상을 멈추고 말했다.

“봐. 매장에서 나온 거 맞지?”

민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논리적으로는 맞았다.

물리적으로도 매장에서 나왔다.

다만 합법적으로 나왔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거… 훔친 거 아니에요?”

좌판 주인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언니, 훔친 게 아니라 탈출한 거야.”

“탈출?”

“가방도 자유가 필요해.”

민서는 머리가 아파졌다.

옆에 있던 관광객은 이미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저는 하나 살게요.”

민서가 깜짝 놀라 물었다.

“진짜 사시게요?”

관광객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영상 보니까 믿음이 가네요.”

민서는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진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품처럼 느껴지는 서사를 원하는 것이었다.

보증서보다 강한 건 영상이었다.
매장보다 강한 건 탈출 장면이었다.

그때 갑자기 골목 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폴리스!”

좌판 주인의 얼굴이 굳었다.

조용하던 골목이 순식간에 살아났다.

좌판 주인은 가방들을 능숙하게 보자기에 쓸어 담았다.

그 속도가 거의 무술이었다.
루이, 샤넬, 디올, 구찌가 한 보자기 안에서 사이좋게 구겨졌다.

명품 민주주의였다.

“언니, 살 거면 지금!”

“아니요, 저는…”

“오십 아니고 사십!”

“아니, 그게 아니라…”

“삼십! 마지막!”

민서는 흔들렸다.

가격이 내려갈수록 도덕성이 같이 내려갔다.

경찰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좌판 주인은 마지막으로 민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이거 들면 파리 감성 완성.”

민서는 가방을 봤다.

매장 안 가방은 여전히 고고했다.

좌판 위 가방은 곧 체포될 운명이었다.

그 순간 민서는 이상하게도 좌판 가방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인생도 그렇다.

진짜인 척하는 것보다, 가짜인 걸 들킨 채 도망치는 쪽이 더 솔직할 때가 있다.

민서는 지갑을 꺼냈다.

“삼십에 주세요.”

좌판 주인은 눈을 반짝였다.

“언니, 현명해.”

그는 가방을 건네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다.

마치 명품백계의 닌자 같았다.

몇 초 뒤 경찰이 도착했다.

“Did you see a man selling bags?”

민서는 손에 든 가방을 등 뒤로 숨겼다.

“백이요? 무슨 백이요?”

경찰은 민서를 의심스럽게 봤다.

민서는 태연하게 웃었다.

그 순간 가방 안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보증서였다.

경찰이 그 종이를 주웠다.

CERTIFICATE OF LUXURY

경찰은 종이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Again…”

민서는 얼어붙었다.

경찰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Madam, this is not luxury.”

민서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아요.”

경찰이 물었다.

“Then why did you buy it?”

민서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잖아요.”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명품 매장에서는 돈을 주고 가방을 산다.

하지만 길거리 좌판에서는 삼십 유로에 추격전, 보증서, 철학, 경찰 면담까지 패키지로 받는다.

가성비로는 압승이었다.

그날 밤, 민서는 호텔 방에서 가방을 다시 꺼내 보았다.

가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자세히 보면 엉성했지만, 멀리서 보면 제법 당당했다.

마치 많은 사람들의 인생처럼.

민서는 거울 앞에서 가방을 들어봤다.

어울렸다.

기묘하게 어울렸다.

그녀는 혼잣말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그때 가방 안쪽에서 뭔가 반짝였다.

민서는 손을 넣어 작은 종이를 꺼냈다.

또 다른 보증서였다.

이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제품은 진품이 아닐 수 있으나, 추억은 정품입니다.”

민서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명품은 가방이 아닐지도 모른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좌판 주인과, 그 영상을 보고 신뢰를 얻은 관광객과, 가짜 보증서에 설득당한 자기 자신.

그 모든 어이없음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명품이었다.

물론 다음 날 민서는 그 가방을 들고 명품 매장 앞을 지나갔다.

매장 직원이 그녀의 가방을 힐끗 봤다.

민서는 괜히 어깨를 폈다.

직원이 다가왔다.

“Madam.”

민서의 심장이 멎을 뻔했다.

직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Nice bag.”

민서는 당당하게 웃었다.

“Thank you.”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매장에서 나왔대요. 뛰어서.’

그날 파리의 하늘은 맑았다.

명품 매장은 여전히 고급스러웠고, 길거리 좌판은 이미 다른 골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좌판 주인은 또 말하고 있을 것이다.

“언니, 이거 진짜야. 거의.”

그 말은 이상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거짓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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