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나라 단백질 루틴
사오나라 단백질 루틴
김만복은 마흔일곱 살이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선택받았다.
보통 알고리즘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사람을 새벽 세 시에 “고양이가 오이를 보고 놀라는 영상”으로 인도하는, 현대 문명의 조용한 악마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만복의 휴대폰 화면에는 이런 제목이 떠 있었다.
“아침 두부·저녁 닭고기 습관, 중년 몸이 이렇게 달라졌다”
만복은 숨을 멈췄다.
“중년 몸이 달라진다고?”
그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중년이 있었다.
그냥 중년도 아니고, 회식과 야식과 탄산의 협업으로 완성된 프리미엄 중년이었다.
배는 겸손을 잊은 지 오래였고, 턱은 하나였던 시절을 역사책처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만복은 결심했다.
“오늘부터 바뀐다.”
그의 아내 순자는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또 뭐 봤어?”
“건강 영상.”
“지난번에도 봤잖아. 그때 ‘공복에 걷기’ 보고 새벽에 나가더니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고 왔잖아.”
만복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걷다 보니 국물이 필요했어.”
순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인간의 자기합리화는 대체로 설명할수록 더 나빠진다.
영상 속 전문가는 말했다.
“중년 이후에는 단백질 섭취가 중요합니다. 아침에는 두부처럼 부담 없는 식물성 단백질을, 저녁에는 닭고기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챙기면 도움이 됩니다.”
만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두부. 저녁 닭고기.”
순자는 살짝 기대했다.
“그래, 드디어 제대로 먹으려나 보네.”
그러나 순자는 인간이라는 종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날 오후 6시 12분.
만복은 휴대폰 배달 앱을 켰다.
검색창에 그는 신성한 손가락으로 이렇게 입력했다.
두부김치
이어 또 검색했다.
후라이드치킨
그리고 마지막으로 편의점 배달 카테고리에서 소주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소주 2병.
만복은 흐뭇하게 웃었다.
“완벽하다.”
순자가 그의 옆에서 화면을 보았다.
“이게 뭐야?”
“아침 두부, 저녁 닭고기.”
“그런데 왜 두부가 김치랑 볶음고기 사이에 깔려 있고, 닭고기는 튀겨져 있어?”
만복은 매우 진지했다.
“영상에서 조리법은 안 말했어.”
순자는 말문이 막혔다.
“그럼 소주는 뭔데?”
만복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수분도 필요하니까.”
순자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사랑과 체념과 국세청 조사관 같은 냉정함이 섞여 있었다.
“그건 수분이 아니라 알코올이야.”
“그래도 액체잖아.”
“사오나라.”
순자는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만복은 그 말을 일본어 인사로 받아들였다.
“여보, 아직 나 안 갔는데?”
그러나 순자의 “사오나라”는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남편의 건강계획에 대한 장례 선언이었다.
잠시 후 음식이 도착했다.
두부김치는 붉고 뜨거웠다.
후라이드치킨은 바삭하고 황금빛이었다.
소주는 투명하게 빛났다.
만복은 식탁 앞에 앉아 경건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오늘부터 건강하게 산다.”
그는 두부를 집었다.
두부 위에는 김치와 돼지고기 볶음이 산처럼 올라가 있었다.
“두부는 몸에 좋아.”
그는 닭다리를 집었다.
기름이 반짝였다.
“닭고기는 단백질이지.”
그는 소주잔을 들었다.
“수분 보충.”
그리고 첫 잔을 마셨다.
몸이 뜨거워졌다.
만복은 감동했다.
“와, 벌써 대사가 올라가는 느낌이야.”
순자가 방문을 열고 나와 말했다.
“그건 취기가 올라오는 거야.”
하지만 만복은 이미 자기만의 과학에 입문한 상태였다.
그는 휴대폰으로 친구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만복:
“건강 루틴 시작했다. 아침 두부, 저녁 닭고기.”
친구 병철이 답했다.
병철:
“사진 보니까 두부김치에 후라이드치킨인데?”
만복:
“핵심 재료는 맞잖아.”
병철:
“소주는?”
만복:
“수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친구 영수가 답했다.
영수:
“너는 영양학을 범죄 현장처럼 해석하는구나.”
만복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새로운 건강법을 개척한 선구자처럼 느껴졌다.
“두부김치 다이어트와 후라이드 단백질 보충법.”
이름도 괜찮았다.
그는 곧바로 유튜브 채널 이름까지 생각했다.
중년만복 건강연구소
첫 영상 제목도 정했다.
“전문가들은 말하지 않는 진짜 단백질 루틴”
순자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또 뭘 꾸미는 얼굴인데?”
“여보, 나 채널 해볼까?”
“하지 마.”
“왜?”
“당신은 정보를 전달하면 안 되는 쪽 인간이야.”
아주 정확한 평가였다.
그날 밤 11시.
만복은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두부는 사라졌고, 치킨도 사라졌고, 소주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빈 접시와 후회와 약간의 트림뿐이었다.
그는 배를 만지며 말했다.
“이상하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아직 안 오네.”
순자는 말했다.
“보통 건강은 다음 날 체중계 앞에서 부고처럼 확인돼.”
만복은 애써 웃었다.
“그래도 단백질 먹었잖아.”
“튀김옷도 먹었고, 나트륨도 먹었고, 술도 먹었고, 양심도 같이 튀겨 먹었지.”
만복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네.”
“당신 몸한테 당신이 더 너무해.”
다음 날 아침.
만복은 눈을 떴다.
입안은 사막이었다.
머리는 북을 치고 있었다.
위장은 퇴사 면담을 신청한 상태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자 어제 남은 두부 반 모가 보였다.
만복은 그것을 바라보았다.
두부도 그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죄가 없다.”
만복은 조용히 두부를 꺼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간장도 조금만 찍었다.
순자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오늘은 제대로 먹네?”
만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깨달았어.”
“뭘?”
“영상에서 말한 두부와 내가 먹은 두부는 같은 두부가 아니었어.”
순자는 잠시 감동할 뻔했다.
드디어 남편이 깨달았구나.
그러나 만복은 이어 말했다.
“오늘 저녁 닭고기는 백숙으로 갈게.”
순자는 미소를 지었다.
“좋네.”
만복이 덧붙였다.
“국물이 있으니까 소주는 한 병만…”
순자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오나라.”
이번에는 만복도 알아들었다.
그날 이후 만복은 건강 영상을 볼 때마다 순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영상 제목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순자는 먼저 물었다.
“이걸 당신 식으로 해석하면 뭐가 돼?”
만복은 대답했다.
“오트밀은 그래놀라 아이스크림?”
“탈락.”
“고구마는 고구마 피자?”
“탈락.”
“닭가슴살은 치킨너겟?”
“나가.”
시간이 지나 만복은 조금씩 바뀌었다.
아침에는 두부를 담백하게 먹었다.
저녁에는 닭가슴살이나 닭다리살을 굽거나 삶아 먹었다.
소주는 주말에만, 그것도 아주 가끔으로 줄였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단백질바를 먹으며 말했다.
“이거 초코맛이니까 건강한 초콜릿이지?”
순자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예전보단 낫다.”
만복은 뿌듯했다.
그는 다시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만복:
“진짜 건강 루틴 시작했다.”
사진 속에는 두부, 삶은 닭고기, 샐러드가 있었다.
친구 병철이 답했다.
병철:
“술은?”
만복:
“없다.”
친구 영수가 답했다.
영수:
“만복아, 너 누구야?”
만복은 웃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그날 밤 그는 오랜만에 속이 편한 상태로 잠들었다.
꿈속에서 거대한 두부가 나타났다.
두부는 흰 도포를 입고 있었다.
“만복아.”
“누구세요?”
“나는 두부신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두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부김치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소주 2병은 선을 넘었다.”
그 옆에는 닭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닭은 매우 억울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를 자꾸 튀기지 마라.”
만복은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두부신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건강 정보는 재료 이름만 따오는 게 아니다. 방식까지 따라 해야 한다.”
만복은 잠에서 깼다.
그는 침대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맞아. 방식까지.”
그때 옆에서 자던 순자가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소주 생각했지?”
만복은 움찔했다.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당신은 꿈에서도 안주를 찾아.”
만복은 입을 다물었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새로운 하루였다.
식탁 위에는 두부가 있었다.
이번에는 김치도 없고, 돼지고기도 없고, 소주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담백한 두부 한 접시.
만복은 젓가락을 들었다.
“사오나라, 어제의 나.”
순자가 말했다.
“그 말은 이렇게 쓰는 게 아니야.”
만복은 웃었다.
“그래도 뜻은 맞잖아.”
순자는 피식 웃었다.
“이번엔 맞다.”
그렇게 김만복의 중년 건강 루틴은 시작되었다.
조금 우스꽝스럽고, 자주 흔들리고, 가끔 치킨 냄새에 영혼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진짜였다.
적어도 소주 2병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인간 기준으로는 꽤 큰 진보다.
놀랍게도 인류는 이렇게 아주 작은 절제 하나에도 박수를 받아야 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두부는 그날도 조용히 접시 위에서 생각했다.
“나는 그냥 콩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인간의 결심을 떠안아야 하는가.”
댓글
댓글 쓰기